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지원/비판 및 논란 (문단 편집) == 뉴욕한인회장 시절 [[전두환]] 찬양 == [[파일:external/static.news.zum.com/20121030000929_1.jpg]] 박지원은 1972년 금성(現 LG전자) 주재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사업가로 활약하다 뉴욕한인회장이 되었는데 1981년 1월, 당시에 대통령이던 [[전두환]]이 미국을 방문할 때 미국 교포로써 '''한인회장''' 박지원을 중심으로 각 교포단체들이 참가하여 환영준비위를 구성한 교포들은 케네디공항과 숙소인 월돌프아스토리아 호텔 부근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환영 행사를 했다. 또한 1985년에도 박지원은 뉴욕평통자문위원회 회장을 맡을 때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환영했다. 또한 '''"[[뉴데일리]]"에 의하면''' 박지원은 1981년 한국방송공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며, 12.12와 5.18은 영웅적인 결단이었다"라고 말했으며, 박지원의 환영위원장 경력을 함께 거론하며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고 민주당의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것에 대하여 '권력의 딸랑이'라고 비판했다. [[http://zarodream.tistory.com/234|그런데 1983년 무렵]]에 미국에서 망명 온 김대중을 만나서 얘기를 나눈 후 그 실상을 알고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았다. 민주주의를 위해 벽돌 하나라도 놓겠다는 심정으로 살겠다."라고 말하며 각오를 밝혔고, 미국에서 힘들게 마련한 기반을 놔두고 본격 김대중의 정치 활동을 돕기 시작한다. 그가 DJ의 노선을 따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이 사선이기도 하다. 이후 국정원장 청문회에서 이 부분을 사과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